회사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주 다양합니다. 매출액, 순이익과 같은 재무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할 수도 있고, 고용한 직원의 수나 사회공헌 활동을 평가해 회사가 사회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기준인 “시가총액”으로 기업을 평가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은 바로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애플”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애플 주가 그래프
2012년에 1위를 찍은 이후로 한 번도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죠. (그 뒤론 엑손모빌과 같은 전통적인 기름 장수들입니다) 현재의 애플 시가총액은 $6,375억 달러, 697조 원입니다.
이런 애플의 성공을 설명할 때, 빠지면 안되는 키워드가 있죠. 네, 바로 “스타브 잡스”와 “아이폰”입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와, 그가 다시 애플로 복귀해서 만든 아이팟, 그리고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신화까지. 여러분께서는 이 스토리를 수도 없이 많이 접해봤을 겁니다. 아이폰5 이후로는 출시 때마다 “혁신은 없었다, 화면만 커지고 달라진 건 없네!”라는 가장 최근의 소식도 낯설지 않으실 거고요. 이쯤 되면 애플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상향 평준화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이 과연 계속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말이죠.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그 당시에는 제일 화면이 큰 스마트폰이었다고!
하지만 이런 의구심은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애플의 능력, “소프트웨어 파워”와 “비즈니스 감각”을 생각하지 않아서입니다. 애플에는 이 두 가지를 영리하게 풀어내는 천재 한 명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애플의 성공 원인을 잘 알려지지 않은 바로 그 사람에서 꼽아보려고 합니다.
애플페이를 소개하는 에디 큐. 바로 이 인종 불명(?)의 사람이 이 글의 주인공입니다.
25년 가까이 애플에서만 일하며 “애플의 머리”라고 불리는 애플 인터넷 소프트웨어 수석 부사장, 에디 큐 입니다. (조나단 아이브나 필 실러 같은 분을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애플의 성공 원인을 이 사람으로 꼽았는지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가 만든 서비스들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아이튠즈와 아이튠즈 스토어
음반사와 리스너들을 동시에 만족시킨 최초의 플랫폼
어 예 씐난다! 아이팟과 아이튠즈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상징이었습니다.
아이리버가 세계 MP3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과연, 이런 아이리버의 아성을 무너뜨린 아이팟은 과연 예쁜 디자인과 휠 인터페이스 때문에 성공한 걸까요?
아이팟 이전의 MP3 플레이어는 그냥 MP3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USB 메모리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폴더와 파일 기반으로밖에 음악을 재생할 수 없었고, 그 방식은 음악을 정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이팟과 아이튠즈의 조합은 MP3 의 “태그” 기능을 제대로 제공을 해서 앨범, 장르, 아티스트, 작곡/작사가 등에 따른 음악 분류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앨범 커버를 전면에 내세운 UI 디자인으로 음악을 CD로 소장하고 싶어하는 리스너들의 욕구도 채워줬습니다.
또한, 불법 음원이 판치던 음원 시장에서 아이튠즈 스토어는 음반사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리스너들이 CD를 사는 그 짜릿함을 극대화한 UI/UX 디자인에 합리적인 수익 분배는 음반사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소니뮤직, 유니버셜, 워너 등의 메이저 음반사들을 한 테이블에 올리며 “음반산업의 새로운 혁신을 가져와 보자”는 비전을 제시한 아이튠즈. 이는 애플 성공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지금 봐도 졸라 예뻐!
아이튠즈 매치
불법 음원을 걱정하는 음반사의 고민을 해결해주다.
불법 MP3 다운로드는 음반 업계 최대의 고민입니다.
한 달에 만 원 정도는 음악에 투자하세요 두 번 하세요
아이튠즈 스토어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메이저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도 유사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게다가 “애플보다 더 적은 수수료”라는 미끼로 음반사를 유혹하지요. 이 때문에 음반사와 애플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던 2011년, 에디 큐는 천재적인 비즈니스 감각이 곁들여진 서비스를 출시하며 음반사의 불법 음원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 줍니다. 바로 “아이튠즈 매치”로 말이죠.
이게 바로 아이튠즈 매치!
아이튠즈 매치는 연 $24.99를 내고, 최대 22,000곡까지 나의 MP3 파일을 아이클라우드에 올려서 언제 어디서 어떤 디바이스에서든 스트리밍으로 듣게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그럼 어느 포인트가 음반사의 고민을 해소해 준걸까요? 바로, 불법으로 다운받은 MP3 파일도 합법으로 다운받은 MP3 파일처럼 음원 세탁(!) 을 해주고, 이런 MP3에 대해서 $24.99의 일정 부분을 음반사와 공유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있습니다.
불법 음원으로도 돈을 벌어주겠다는 애플의 제안을 어느 음반사가 거절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리스너 입장에서는 아이튠즈 매치가 불법 음원을 합법 음원으로 바꿔주고, 내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게 해주니, 또 한 번 천재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저도 6개월 째 이거 쓰고 있는데, 완전 만족입니다 헤헤 (미국 계정만 돼요)~
- 구글 뮤직이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앱스토어
소프트웨어 세계의 새로운 기준 불법 다운로드로 돈을 못 버는 개발자들과, 고 퀄리티의 앱을 안전한 곳에서 다운받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을 만족하게 해준 앱스토어. 이게 아이폰 성공의 핵심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또한 “에디 큐”의 작품이죠. 개발자 측면에서 본 앱스토어와 iOS도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이 글의 주제와는 멀기에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클라우드
스마트한 애플의 핵심
아이클라우드의 전신, 모바일 미. 누가 이걸 기억하랴.
iOS를 처음 만들었을 때 함께 있었던 서비스, 모바일 미(mobile me) 기억하시나요? 아이클라우드와 같은 개념의 서비스였지만, 독립된 앱으로 존재하는 데다가 매끄럽지 못해서 클라우드의 본질인 접근성과 심리스(seamless, 적절한 한국어가 없네요)함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망한 서비스였죠. 수술대에 올라온 모바일 미는 에디 큐에 의해 아이클라우드로 탈바꿈했고, 현재는 iOS와 Mac OSX의 핵심이 됐습니다. 심지어, 상당수 이용자에겐 아이폰과 맥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죠.
개발자 측면에서 봤을 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수많은 서비스보다 적어도 2~3년은 앞서나갔다고 봅니다. 다들 아직도 외장 HDD를 대체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밖에 만들지 못하고 있을 때, 애플은 iOS와 Mac에 깔린 모든 앱의 데이터가 공유되는 클라우드를 몇 년 전부터 만들어 왔으니까요. 또한, 모바일과 데스크톱 모두에서 경쟁력 있는 OS를 지닌 업체는 애플밖에 없기에 다른 업체들이 아이클라우드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구글은 Docs, Sheets, Slides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마이크로소프트는 Office를 클라우드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과연, 클라우드 서비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애플페이
레드오션을 새롭게 바라보는 애플만의 접근법
아이폰과 애플와치로 애플페이를 사용하는 모습.
오오, 애플느님 한국에 빨리 출시해 주세요
지난 9월, 아이폰 6과 6+ 발표회에서 애플은 “애플페이” 라는 결제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애플페이는 가맹점에서 아이폰을 결제 기기에 대기만 하면 아이폰의 NFC로 “띱” 이 되면서 결제가 되는 서비스로, 이날 발표에서 아이폰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게다가 미국인들의 생활에 밀접한 여러 서비스와 미국 카드회사 대부분과 이미 계약을 체결한 상태로 발표되어서 많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지요.
얼핏 보면 구글의 “구글 월렛”이나 우리나라의 SKT와 KT가 이미 하고 있던 NFC 결제 서비스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고, 여러 언론은 “혁신은 없었다”는 타이틀로 신나게 애플을 깠습니다. 과연 애플과 에디 큐는 어떤 전략으로 애플페이를 런칭한 것일까요?
다른 여러 결제 서비스들은 대부분 자신이 마치 카드사인 것 마냥 수수료를 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기존 카드사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애플페이는 아이폰과 아이튠즈의 내 계정에 저장된 카드정보를 이용해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카드사의 수수료 영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카드사는 카드 재발급 비용도 줄일 수 있고요. 즉, 아이튠즈는 음반사와의 윈윈을 추구했다면, 애플페이는 카드사와의 윈윈을 추구한 플랫폼이기에 애플페이는 런칭할 때부터 대부분의 카드 회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애플페이는 어떻게 돈을 벌까요? 바로, 실제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하는 “가맹점”으로부터 떼는 수수료입니다. 자,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가맹점 입장에서는 기존의 카드사에 주는 수수료 2~3%에 애플에게 주는 수수료 1%가량이 추가되기 때문에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도대체 애플페이가 어떤 매력이 있어서 수많은 가맹점이 애플페이를 거부감 없이 도입하고 있을까요?
컴퓨터가 아니라 위에 보이는 카드 리더기가 해킹당했습니다!
이는 “보안”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해킹을 당하며 결제 가능한 카드 정보가 유출되고 있죠. 그게 어느 정도냐면, 작년에 타겟 (한국으로 치면 이마트 정도)에서는 수많은 “카드 리더기의 칩셋 자체”가 해킹되어서 카드를 긁는 족족 카드정보가 해커에게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무료 5,000만 개가 넘는 결제 가능한 카드정보였지요. 제 카드도 해킹을 당했었는지, 잠깐 한국에 들어온 사이에 타겟에서 $780의 결제시도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미국에 있었으면 꼼짝없이 결제됐었을 겁니다.)
하지만 애플페이를 사용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플페이는 매 결제 때마다 새로운 일회용 키를 발급해서 그 키를 이용해 결제하거든요. 해커가 어찌어찌 해서 그 키를 알아낸다 하더라도, 일회용이니 결제가 될 리가 없습니다. (물론, 매 결제 때마다 사용되는 카드는 동일합니다.) 거기다가 비밀번호보다 훨씬 보안성이 높은 터치ID(지문인식)를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더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죠. 즉, 애플이 가맹점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는 이러한 보안 리스크를 덜어주는 “보험료” 같은 성격이 강해서 가맹점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별다른 서비스에 가입할 필요 없이 카드번호만 입력해놓고 터치ID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UI/UX 측면에서도 카드보다 훨씬 낫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서비스들 이외에도 에디 큐는 망해가는 애플맵을 다시 살려냈고, 시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에디 큐와 애플이 만든 서비스, 플랫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애플의 진정한 저력과 무서움이 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경쟁사들보다 한 두 발짝 앞서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제 애플을 쫓아왔다.”라는 생각을 할 때쯤 또 다른 패를 계속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거기다가 이 레퍼토리가 지난 15년 동안 계속 반복됐던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애플의 어딘가에 이러한 DNA가 있고, 바로 그 것이 “에디 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를 만들 능력은 출중하지만,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능력은 아직 갈 길이 먼 삼성. 소프트웨어는 지존급이지만, 하드웨어엔 경험이 부족한 구글. 하지만 지금까지의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서 경지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거기에 여러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멍석(플랫폼)을 까는 “비즈니스 감각”까지 갖추고 있고, 이 글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그 “비즈니스 감각”에 대해서 다뤄봤습니다.
애플의 다음 한 발걸음과 다른 회사들의 또 다른 전략, 이 경쟁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세상과 미래, 그리고 그 미래에 우리는 어떤 기여를 할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다음 세대의 전쟁터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정자동화와 헬스케어.
이 부분에서도 애플은 앞서나가고 있습니다.